2025년 10월 5일 밤에 출발해 18일 오후에 돌아온 열사흘짜리 여행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이었고 유럽은 처음이었다. 동남아와 일본밖에 가 본 적이 없어서 유럽은 미지의 영역이자 조금 두려운 곳이었다. 이 시리즈는 그때 찍은 사진과 여행 중에 쓴 일기로 정리한 기록이다. 1편은 출발부터 스위스 첫날 밤까지.
10월 5일, 캐리어 20kg으로 1터미널에

출발 전에 캐리어 무게를 쟀더니 약 20kg이었다. 동행은 15kg. 돌아올 때는 무게가 뒤바뀌어 있었다. 오후 4시에 찍은 캐리어 사진에 컵밥과 컵라면, 튜브 고추장, 즉석밥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 물가를 생각해 끼니 일부를 이걸로 때울 계획이었고, 실제로 이 여행에서 컵라면과 즉석밥으로 저녁을 먹은 날이 여러 번 있었다.
비행기가 새벽 1시 20분인가 40분이라 9시 반에서 10시쯤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다. 제1터미널에 내렸을 때부터 난항이었다. 웹체크인을 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이 뒤섞여 줄이 구분되지 않아 혼란스러웠고, 그곳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직원은 남자 직원 한 명이었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 건 이해하지만 조치가 부족해 아쉬웠다. 그래도 다들 여행 가는 길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넘기지 않았을까 싶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반대편 터미널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두유 두 개와 고단백 저당 베이글 두 개를 샀다. 각자 하나씩만 먹었는데 맛있었다. 전지훈련을 가는지 운동선수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탑승할 시점에는 이미 하루가 지난 10월 6일이었다.
10월 6일 새벽, 목베개가 오히려 불편했던 비행
목베개를 하고 탔는데 카타르항공 비행기에는 이미 베개가 있어서 목베개 부피 때문에 목이 더 조이는 느낌이었다. 인천에서 도하까지는 헤드폰으로 한스 짐머 라이브 공연을 들었다. 라이브보다 음원이 더 좋은 것 같았다. 첫 기내식은 소불고기 덮밥과 코울슬로 비슷한 샐러드였다. 우리 라인을 맡은 승무원은 무척 친절해서 디카페인 커피도 손수 갖다 주었고, 커피를 시키면 설탕과 우유를 항상 따로 챙겨 줬다. 두 번째 기내식은 웨지감자와 소시지, 베이크드 빈즈가 나오는 영국식 식사였고 디저트로 케이크가 나왔다.
신기했던 건 기내 화면에서 카메라 뷰를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자동차 후방 카메라처럼 하단, 후면, 전면이 나온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있는지, 아래 경치가 어떤지 볼 때 유용했고 도하에 착륙할 때는 휴대폰으로 그 화면을 찍어 두었다. 현지 시각 새벽 5시 반에 도하에 내렸으니 한국 시각으로는 낮 12시, 열 시간 넘게 탄 셈이다.

도하 환승 세 시간, 대추와 맥라렌
도하에 내렸을 때는 약간 긴장됐다. 피곤한 데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난이 걱정됐다. 대형 체인 편의점에서 인형과 컵, 기념품을 구경하고 토블론 초콜릿을 살지 말지 고민하다가 하나만 샀다. 어차피 스위스에서 사게 될 거라고 해서. 전광판에는 코펜하겐, 베네치아, 밀라노, 취리히, 뮌헨, 로마행이 아침 9시 전후로 줄지어 있었다.


하얀 맥라렌이 전시돼 있어서 사진을 하나 찍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처럼 식물을 전시해 놓은 실내 정원 같은 곳이 있어서 거기서 동영상을 좀 찍었다. 사람들은 거기서 자기도 하고 요가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하는 대추가 유명한 것 같았다. 대추로 만든 먹을거리가 많았다.
도하에서 취리히, 옆자리가 비어 있던 비행기

도하에서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는 한산했다. 우리 둘 다 옆자리가 비어서 편하게 왔고, 어떤 승객은 아예 누워서 잤다. 우리는 그렇게까지는 안 했다. 기내식은 닭고기 파스타와 케이크였고 맛있었다. 화이트 와인도 한 잔 시켰다. 네팔 위를 지날 때쯤 기내 하단 카메라에 설산이 나왔는데 신기했다. 착륙 6분 전부터 화면을 찍었는데 아래가 완전히 논밭이어서 놀랐다.
취리히 공항(Zürich Flughafen)에서 베른(Bern)을 거쳐 인터라켄 서역(Interlaken West)으로

취리히 공항에서 제네바행 기차를 타고 베른에서 내려, 베른에서 인터라켄 서역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기차를 타는 내내 휴대폰이 뜨거웠다. 처음 보는 전원 풍경과 설산에 홀려서 계속 찍었기 때문이다. 신기했던 건 같은 기차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 세 명이 있었는데 창밖 풍경을 전혀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스위스 여행이 끝날 때쯤 알게 됐다. 이미 너무 많이 봐서 지겨웠던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풍경은 익숙해졌다.

인터라켄 서역에 내렸을 때는 모든 게 신기했다. 주변을 둘러싼 높은 산, 하늘에 떠 있는 형형색색의 패러글라이딩 낙하산. 숙소는 기차역 근처였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키를 대야 한다는 것, 수건은 미리 제공된다는 것, 10시 이후에는 카운터 직원이 없다는 설명을 듣고 올라갔다. 방 번호를 제대로 못 들어서 처음에 7호 방 문을 열려다 안 열렸고, 2호 방도 한 번 안 열려서 내려가려다 다시 해 보니 열렸다. 방에는 기숙사형 2층 침대와 킹 침대 하나, 침대가 네 개 있었다.
테라스 해질녘, 그리고 밤 풍경을 못 본 아쉬움


짐을 간단히 풀고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4층 부엌과 라운지로 가 봤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이 정말 예뻤다. 거의 해질녘이라 빙하 계곡 위로 황금색 빛이 스멀스멀 퍼져 나갈 듯한 기미가 보였고, 차가운 바람이 청량함을 더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국인 넷이 도란도란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도 해외여행을 미리 알았다면 일찍부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밥을 해 먹느라 정신이 팔려서 밖에 나가 밤 풍경을 보지 못한 게 좀 아쉽다. 이보다 더 예쁜 풍경을 뒤 일정에서 보긴 했지만, 처음 자리 잡은 숙소였고 원래는 맥주 한 병씩 사서 바깥 풍경을 보려고 했는데 식사가 늦어져 바로 잤다.
쿱(Coop) 마트, 체감 물가 서울의 세 배
숙소 근처 쿱 마트에 갔다. 스위스 물가의 악명은 익히 들었는데 체감으로 서울 마트의 세 배쯤 됐다. 다만 제로콜라나 빵, 바나나처럼 가공을 많이 거치지 않은 것들은 되게 저렴해서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노동력이 들어간 제품일수록 인건비 때문에 비싼 것 같았다. 삼겹살을 구하지 못해서 돼지 가슴 쪽 부위(뼈가 붙어 있는 줄 몰랐다)와 물, 콜라, 다음 날 기차에서 먹을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를 사서 돌아왔다.

돌아오니 부엌 프라이팬 위에 기름과 물이 섞인 알 수 없는 액체가 올라가 있었다. 처음엔 기름인 줄 알았는데 휴지를 담가 보니 물이 섞여 있었다. 마침 테라스에서 와인을 곁들여 저녁을 먹던 한국인 커플이 있었는데, 게스트하우스에서 뒷정리는 기본인데 안 한 게 괘씸해서 직접 물어보러 갔다. 남자분이 바로 일어나 미안하다고, 이렇게 바로 오실 줄 모르고 불려 놨다고 했다. 다행히 그분이 프라이팬을 설거지해 줘서 우리도 요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고기를 굽기 시작했고 동행은 다음 날 먹을 참치마요 주먹밥을 쌌다. 둘 다 요리 경험이 전무해서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주먹밥은 모양을 내지 않고 밥째로 실리콘 통에 담았고 먹어 보니 맛있었다. 내가 구운 고기는 한국에서였다면 당장 음식물 쓰레기통에 들어갈 수준으로 육즙이 다 빠졌지만 정말 맛있었다. 요리가 끝날 때쯤 다음 날 출국하는 한국인 부녀가 부엌에 왔다. 누룽지를 만들어 간식으로 먹을 거라고 했고,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 스위스 여행 팁을 알려 주고 전라도식 파김치를 나눠 줬다. 너무 맛있었는데 좀 짜고 매웠다. 동행은 그 팁을 듣고 우리 일정에 수정을 가했고 나는 그냥 밥만 맛있게 먹었다. 햇반 두 개, 볶음김치 캔, 썬 김치 캔, 고기 1kg가량을 다 먹었다.
뒷정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씻었다. 우리 방에서 계단을 반 층 올라가면 샤워장이 있었는데 말끔했다. 층마다 샤워장이 있고 우리 층에는 거의 우리만 쓴 것 같았다. 변기와 세면대가 같이 있었고 물기를 미는 밀대도 있었다. 샤워를 하고 금세 잠들었다.
이틀을 정리하면
| 시각(현지) | 있었던 일 | 같은 길을 간다면 |
|---|---|---|
| 10/5 16:07 | 캐리어 약 20kg, 컵밥과 라면 | 즉석밥과 라면은 스위스 물가 대비 효과가 크다 |
| 21:30부터 22:22까지 | 1터미널 체크인 줄 혼란 | 웹체크인을 해도 줄은 같이 선다. 여유 있게 |
| 10/6 05:30 | 도하 도착, 환승 3시간 | 목베개는 필요 없다. 기내 카메라 뷰를 볼 것 |
| 15:14 | 취리히 도착, 제네바행 기차로 베른 환승 | 기차에서 사진은 처음 한 시간만. 곧 익숙해진다 |
| 17:29 | 인터라켄 서역, 역 앞 숙소 | 10시 이후 카운터 없음. 방 번호를 확실히 듣기 |
| 18:06 | 4층 테라스 해질녘 | 저녁 전에 밤 풍경부터 볼 것 |
| 19:32부터 20:19까지 | 쿱에서 산 고기와 햇반, 파김치 | 가공 안 한 식재료는 싸다. 공용 주방은 뒷정리 |
다음 날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체르마트로 갔다. 2편에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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